💌 서촌라이프 발행 12주년, 뉴스레터 서비스 1주년을 맞이하며.
2010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동네 이름은 아루샤였습니다.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사이에 있던 동네였는데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루샤 시내에는 피카소라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피카소는 당근 케이크가 맛있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피카소를 찾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카페에 메일 주소를 등록하면 이메일로 지역의 소식을 보내주는 ‘아루샤 메일링 서비스’ 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뉴스레터 같은 서비스였는데 아루샤 가게들의 구인구직부터 시장이나 행사 소식, 사건/사고 등 다양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습니다. 현지 한인 분께 아루샤에서 살 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추천을 받아 등록을 했는데, 메일링 서비스에 담긴 유용한 정보 덕분에 현지에서 제 삶은 많이 풍부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피카소 카페의 메일링 서비스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이방인으로서 빠르게 애정을 가지고 뿌리를 내리며 살 수 있던 건 평등하고 유용한 정보 공유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아프리카로부터 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며 결심을 했습니다. 나도 피카소 카페의 메일링 서비스처럼 서촌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미디어를 만들어야겠다고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 주도로 만드는 일방적인 결과물도 아니었고,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들과 필요한 이야기였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나눠주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2011년 3월 1일, 다시 나고 자란 서촌으로 돌아온 저는 무모하지만 꿈을 도전하고 싶어서 동네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을 고민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카페 맛집 같은 서촌의 핫플레이스 얘기만 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삶의 이야기를 담자, 그래서 ‘서촌라이프’라고 했어요. 당시엔 지금 같은 온라인 뉴스레터 서비스가 없어서 오프라인 매거진으로 만들었어요. 도와주거나 관심 있는 사람이 없어 혼자 방에서 전문 편집 프로그램도 아닌 한글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는데, 교회 주보를 만드는 수준이었지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촌스러운 동네 잡지는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았어도 꾸준히 만들다 보니 독자가 한두 명씩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스태프도 생겨서 꽤 그럴싸하게 잡지의 모습을 갖추고 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 악화와 재정 부족으로 쉬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다 결국 휴간을 결정했습니다. 언젠간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는 다짐을 하고 다른 사업들과 함께 바쁜 일정을 살아오며 묵은지처럼 깊숙히 묻어두었죠.
2022년 3월 1일, 감각적인 눈을 가진 김민하 님을 편집장으로 그리고 글을 따뜻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잘 쓰는 최연우 님을 에디터로 모셔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름과 철학은 그대로, 형식은 시대에 맞춰서 접근성이 좋은 이메일 뉴스레터로 만들었죠. 처음엔 무슨 얘기를 담아야 할지, 어떻게 꾸며야 할지도 어색했고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어느새 50회의 뉴스레터를 발행한 지금은 능력 있는 지역 작가님들께서도 제작에 참여해 주시고, 구독자는 500여 명 가까이 되었으니 감개무량하네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느끼는 서촌의 온도는 핫(hot)이 아닌 웜(warm)에 가깝습니다. 12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서촌의 가치와 매력은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라이프가 모여있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건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지 않고 더 커지고 다양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희가 할 일도 더 많아진 거 같고요. 저희는 그런 다양한 서촌라이프를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담아내겠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에서 별을 바라봤고, 서촌에서 작은 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내는 따뜻한 빛을 지켜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발행인 설재우 드림